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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 착각은 외로움의 그늘에서 태어난다

발효와 숙성의 실험 2025. 9. 20.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 착각은 외로움의 그늘에서 태어난다는 관계의 본질을 외면한 채 감정에 기대 살아가는 이들의 슬픈 착각을 조용히 드러낸다. 나는 안나의 시선을 따라가며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들이 사실은 내면의 공허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 착각은 외로움의 그늘에서 태어난다

 

 

첫 장면에 나를 던졌을 뿐 그곳엔 그가 없었다.

첫 장면에 나를 던졌을 뿐 그곳엔 그가 없었다. 안나가 처음 벤과 대화를 나누던 순간 나는 그들의 말투 속에 흐르는 미세한 온도 차이를 느꼈다. 벤의 시선은 산만했고 말의 끝은 늘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안나는 그 불완전함을 ‘설렘’으로 착각했다. 그녀는 마음을 던졌고 그저 떨어지는 감정의 궤적을 사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과정이 어쩐지 너무 익숙했다. 나 또한 과거 어떤 관계에서 상대의 말보다 내 상상을 믿었고 그의 입모양보다 내 해석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은 원할수록 더 많이 오해한다. 안나는 그의 모호함 속에서 가능성을 찾았고 나는 그런 안나에게서 관계가 아니라 고립된 감정의 자기 대화를 보았다. 그녀가 자신이 벤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장면은 오히려 나에게 안나가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혔다. 상대의 선택이 아닌 자신의 바람만으로 구성된 감정은 끝내 외면당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외면은 예상보다 훨씬 조용하게 잔혹하게 찾아온다. 안나는 벤의 무관심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했다. ‘그도 분명 나를 신경 쓰고 있어.’라는 믿음은 진실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나는 안나가 그 희망에 매달릴수록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결국 문제는 사랑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녀가 사랑을 빌미로 자신의 외로움을 정당화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를 지운 자리에서 사랑은 흘러들지 않았다.

나를 지운 자리에서 사랑은 흘러들지 않았다. 안나는 스스로를 점점 축소시켰다. 자신의 감정, 판단, 직감을 모두 ‘그의 반응’이라는 이름의 기준 아래 놓고 있었다. 벤이 웃으면 행복했고 말이 없으면 불안했다. 나는 그런 안나의 모습 속에서 자율성을 포기한 관계 중독자의 슬픈 초상을 보았다. 사람은 자주 자신을 덜어냄으로써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감정을 감정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종종 파괴적이다. 안나는 ‘그가 나를 원한다’는 사실을 확인받기 위해 끊임없이 더 많이 주려 했고 더 작아졌다. 그 크기만큼 상대의 존재는 커졌고 결국 관계의 균형은 무너졌다. 벤은 안나의 존재를 불편하게 느끼면서도 완전히 밀어내지는 않았다. 나는 그 애매한 태도가 오히려 더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관계에서 가장 잔인한 건 외면이 아니라 확인하지 않는 애매함이다. 벤의 모호함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기제였지만 안나에게는 잔인한 지연이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솔직하지 않았다. 친구들 앞에서는 여전히 괜찮은 척을 했고 스스로에게도 ‘이건 진짜 사랑이야’라고 반복했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며 사랑이란 단어로 감정을 포장하고 감춰야 했던 그녀의 자존감의 붕괴를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안나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사랑받기를 원했지만 자기를 지운 자리에는 누구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돌아왔다

그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돌아왔다. 끝내 벤은 안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았다는 표현조차 과분할 정도로 그는 무관심했고 무책임했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안나가 혼자 남은 뒤 보여주는 침묵 속에서 감정의 무게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더는 그의 메시지를 기다리지 않았고 예전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었다. 이건 단순한 이별의 통과가 아니었다. 나는 안나가 마침내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다. 벤이 떠나서가 아니라 벤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어떤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말이 있다. 안나는 끝내 그 선택을 타인에게 위임한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 장면에서 느리지만 확실한 회복의 서사를 발견했다. 더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더는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 안나를 덮고 있었다. 이 영화는 결국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를 버티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나도 그랬다. 나 역시 어떤 이에게 선택받지 못한 채 살아남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실패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안다. 선택받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나의 침묵을 통해 위로받았다. 그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이었고 혼자가 된 그녀는 더 이상 작아지지 않았다. 그가 오지 않았기에 오히려 안나는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귀환은 사랑보다 더 단단한 회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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