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 무소속으로 살아낸 서울의 초상
소공녀 – 무소속으로 살아낸 서울의 초상은 도시의 구조와 속도에서 비껴 난 한 사람이 자기 존엄을 지켜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포기’라는 단어가 꼭 패배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전세금보다 맥주와 위스키를 선택한 그녀는 무모했지만 명확했다
전세금보다 맥주와 위스키를 선택한 그녀는 무모했지만 명확했다 전세금보다 맥주와 위스키를 선택한 그녀는 무모했지만 명확했다. 영화의 초반 미소는 월세가 오르자 집을 나간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포기하면서까지 이곳에 남고 싶진 않아.’ 나는 이 말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그녀가 살아가는 기준이 세상과 충돌하는 지점임을 직감했다. 우리는 대체로 구조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미소는 그 구조에서 벗어난다. 서울은 고정된 자리 없이 떠도는 사람들에게 관대하지 않다. 미소는 친구 집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이어가지만 그녀가 유랑하는 방식에는 목적 없는 부유가 아니라 선택한 방식의 삶이 있었다. 나는 이 방랑을 보며 ‘미소는 도시의 외곽에서 중심보다 더 단단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현실을 강조하고 타협을 종용한다. 하지만 미소는 다르게 말하지 않는다. 말 대신 자리를 비우고 집을 나가며 침묵으로 저항한다. 나는 그 모습에서 말로 하지 않아도 분명한 사람의 힘을 느꼈다. 대단한 이상이 아니라 작고 단단한 취향 하나를 포기하지 않는 존엄이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미소를 유약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녀가 누구보다 강하다고 느꼈다. 맥주 한 잔, 위스키 한 모금에 담긴 ‘나를 지키고 싶다’는 감정은 월세 계약서보다 훨씬 무거운 선택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상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결핍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삶이 좋다."라는 조용한 확신.
편의와 소속을 거부한 사람은 도시의 무게를 몸으로 견뎠다
편의와 소속을 거부한 사람은 도시의 무게를 몸으로 견뎠다 편의와 소속을 거부한 사람은 도시의 무게를 몸으로 견뎠다. 미소가 친구들의 집을 돌며 머무는 장면은 겉보기에 따뜻해 보이지만 나는 그 안에서 서늘한 경계와 한계를 읽었다. 잠깐은 환대하지만 오래 머물면 불편해지는 것.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무소속의 존재는 어느 순간 공간을 침범하는 ‘낯선 타자’가 된다. 나는 그 장면들을 통해 도시가 품을 수 없는 존재의 밀도를 실감했다. 미소는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기로 선택한 게 아니라 소속되지 않는 삶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사람들과 웃고 떠들지만 언제나 그들 틈에 딱 맞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외로워서가 아니라 적당히 맞춰지지 않기 때문에 혼자인 것이라고 느꼈다. 그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기 자리를 비워둔다. 직업은 있지만 사회적 지위는 없다. 친구들은 직장을 얘기하고 미래를 말하지만 미소는 대화에서 멀어지며 자신만의 시간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침묵이 체념이 아니라 소속되지 않겠다는 의지로 들렸다. 그녀는 사람들과 같은 지하철을 타지만 다른 목적지에 도착한다. 같은 거리를 걷지만 다른 삶의 단위를 살아간다. 도시는 끊임없이 조건을 요구한다. 주소, 직장, 직위, 소속감. 미소는 그 어떤 것도 내세우지 않는다. 오직 좋아하는 음악과 술 그리고 과거의 추억들만 들고 서울을 걷는다. 나는 그 모습이 무모하게 보이기보다는 치열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전투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틀에 자신을 구겨 넣지 않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삶을 다시 짓는 법 그녀는 고정되지 않은 집을 짓는다.
삶을 다시 짓는 법 그녀는 고정되지 않은 집을 짓는다. 영화의 말미에서 미소는 또 다른 집으로 이동한다. 그 집이 잠시 머무는 곳일지라도 나는 그녀가 마침내 자신만의 방식을 완성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흔히 우리는 집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생각하지만 미소에게 집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놓을 수 있는 감정의 구조에 가까웠다. 나는 그녀가 고정된 집 없이도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정착하지 않는 삶이 반드시 불안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미소는 물건보다 감정을 기준으로 삶을 정리하고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리듬으로 하루를 설계한다. 그건 불안정이 아니라 유연함이었다. 과거의 연인을 찾아가고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며 미소는 삶의 균열 속에서도 끊어진 인연을 가만히 매듭지으려 한다.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실패가 아니라 변화로 받아들여지는 시간. 나는 그녀가 선택한 침묵과 그 안의 복잡한 감정들을 통해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를 느꼈다. 마지막 장면 미소는 다시 웃는다. 작은 방, 소박한 식탁, 마시던 술 한 병. 그 풍경이 내게는 ‘이대로도 괜찮다’는 선언처럼 다가왔다.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소속되지 않아도 단단한 자신만의 집을 짓는 사람. 나는 그 존재만으로도 미소가 이 도시에서 지지 않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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