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 분노는 축적되고 폭발한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게
레 미제라블–분노는 축적되고 폭발한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게는 구체적인 누군가가 아닌 ‘시스템’과 ‘구조’가 폭력을 만드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관객인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가 죄인일 수 있다’는 감각에 휩싸였다.
경찰차가 지나갈 때마다 긴장이 목덜미를 잡아챘다
경찰차가 지나갈 때마다 긴장이 목덜미를 잡아챘다.
나는 파리 교외의 그 거리 이름도 모르는 동네를 화면을 통해 보면서 이상할 만큼 익숙한 공기를 느꼈다. 그건 내 나라의 골목이 아니었고 내 문화권의 아이들도 아니었지만 그들이 숨죽이는 방식, 눈빛을 숨기는 방법 그리고 침묵을 견디는 자세는 아주 낯익었다.
초반부에 경찰들이 등장하자마자 나는 마음속에 방어적인 긴장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단순한 선입견이 아니라 영화가 의도적으로 그들의 등장을 “질서 유지자”가 아니라 “불안의 주체”로 연출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권위가 아니라 경찰의 기분이 지역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짓고 있다는 사실이 장면 속에서 너무 분명하게 드러났다.
영화는 특별한 연출 없이 카메라는 있는 그대로를 따라간다. 하지만 그 ‘있는 그대로’가 너무 불편하다.
감독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립’을 가장한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에게는 중립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공간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는 걸 예감하고 있었고 그 예감이 틀리지 않길 바라는 이상한 죄책감에 휩싸였다.
내가 가장 놀란 건 등장인물 대부분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들의 방식은 다른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고 그 위협은 곧 폭력이 되었다.
영화 속 아이들이 도망치는 장면에서 나는 어떤 특정한 ‘악당’을 떠올리지 않았다.
그저 이 동네 전체가 이 구조 전체가 폭력을 내포한 시스템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건 파리 외곽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이름 없는 어떤 골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사실이 가장 소름 돋았다.
이건 프랑스의 ‘레 미제라블’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현대 레 미제라블이었다.
분노는 연기가 아니라 구조물이다 사라지지 않고 쌓인다
분노는 연기가 아니라 구조물이다 사라지지 않고 쌓인다.
아이들의 카메라, 남성들의 말투, 여성의 침묵, 경찰의 무시, 서로 다른 인종이 섞인 얼굴들 다채로운 언어와 억양 속에서 나는 뭔가 불길한 진동을 느꼈다.
감독은 이 도시를 화산처럼 그려냈고 그 속을 카메라가 유영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
나는 관객으로서 연출이 참 잔인하다고 느꼈다.
폭력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긴 호흡
폭력이 끝났지만 아직 ‘끝났다고 말할 수 없는’ 긴장.
영화는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버티게 만든다.
소년들이 무언가를 던지는 장면, 어른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
무력하게 바라만 보는 사람들.
나는 그 장면들에서 폭발이 아니라 압축을 보았다.
이 분노는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30년, 40년 동안 축적된 감정의 구조물이었다.
정치도 없고 희망도 없다.
다만 그곳엔 '시민'도 '국가'도 없이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프레임을 보고 있을 때
“이걸 내가 관객으로 보고만 있어도 되는가?”라는 자책감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감독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너는 어느 쪽이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도 옳다고 느끼지 않았고 누구도 끝까지 미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규탄하지 않는다.
단지 모든 인물이 조금씩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무너짐을 지켜보는 내 시선 또한
도덕적으로 결백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관객의 시선이 죄책감을 품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철저히 성공한 심리적 폭력 장치다.
마지막 장면이 내 안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멈추지 못하는 질문처럼
마지막 장면이 내 안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멈추지 못하는 질문처럼.
화염, 아이들의 눈, 핸드헬드 카메라의 흔들림.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모두가 파괴된 느낌.
폭발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한 세계가 붕괴하는 것을 보았다.
그 마지막의 대치 장면에서 나는 어느 한 편을 들지 못했다.
그 누구의 입장도 쉽게 설명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완벽하게 책임지지 않았다.
단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확신만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끝내 말하지 못하고 마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감독은 클로징 자막을 던지지 않는다.
명확한 해석도 주지 않는다.
마지막 대사는 질문이었다.
“장발장은 누구였는가?”
나는 이 대사가 영화 내내 쌓여온 모든 감정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는 폭탄 같다고 느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의 장발장은 가해자일 수도 있고 피해자일 수도 있으며 경찰일 수도 있고 아이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장발장이고 동시에 자베르일 수 있다.
나는 영화관을 나서고도 한동안 조용히 있었다.
음악도 안 들었고 휴대폰도 켜지 않았다.
이 영화는 감정을 뱉는 영화가 아니라 감정을 ‘묵히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이 시대에 내가 만든 폭력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영화는 ‘레 미제라블’을 다 보고 나서 시작되는 영화다.
화면이 꺼진 후에도 나의 내부에서는 아직 분노의 불씨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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