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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 – 숨조차 쉴 수 없는 시간들 속 나는 사람이고 싶었다

영화리뷰재밌어 2025. 9. 20.

모가디슈 – 숨조차 쉴 수 없는 시간들 속 나는 사람이고 싶었다. 폭도들의 총성이 귀를 때리던 날 나는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했다. 적도, 편도, 국적도 아무 의미 없는 절대적인 공포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이 이야기는 총알보다 빠르게 흐르던 내 심장 소리와 진흙바닥 위에 굴러다니던 인간성의 마지막 흔적을 따라가는 감정의 기록이다. 나는 지금도 묻는다. 그날 나는 누구였을까.

 

모가디슈 – 숨조차 쉴 수 없는 시간들 속 나는 사람이고 싶었다

 

 

모든 것이 멈췄다 숨을 쉬는 것조차 무례했다

모든 것이 멈췄다 숨을 쉬는 것조차 무례했다.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 나는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 초침이 멈췄다고 느낀 건 단지 기분 탓이었을까. 하지만 사실은 나의 시간이 멈춘 거였다. 바깥에서 외치는 군중의 함성이 점점 가까워질 때 나는 커튼을 닫지 않았다. 닫는다는 행위가 더 무서울 만큼 이미 늦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는 너무 작아서 안심을 줬고 너무 컸기에 전율을 일으켰다. 나는 문 앞으로 걸어가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나는 외교관인가 아니면 그냥 인간인가?” 그 순간만큼은 어떤 역할도 무의미했다. 살아야 했다. 그게 전부였다. 몸을 웅크린 채 창밖의 총성을 듣고 있었다. 그 총성이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단지 공기 속을 헤집는 소음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인간성을 하나씩 벗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목소리를 낮추고 발소리를 지우고 숨소리마저 죽였다. 생존은 조용한 죽음의 방식이었다. 무선 라디오가 켜졌고 누군가 “리비아 대사관은 함락됐다”고 말했다. 리비아. 대사관. 함락. 그 단어들이 한 문장에 들어있을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세계는 무너지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무표정한 얼굴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알겠다.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정을 접어야 한다는 걸.

 

 

도망치고 있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도망치고 있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승용차가 도착했을 때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히 나는 울고 있지 않았는데 눈물은 흘렀고. 입은 다물고 있었는데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우리는 모두 짐처럼 타고 있었고 누가 사람이고 누가 수하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문득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길 위에서 마주친 소말리아 민병대는 사람의 눈을 하고 있지 않았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공포에 잠식당한 인간은 눈빛부터 달라진다. 서로의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공포. 두려움. 공기 속의 피비린내. 그게 우리가 공유한 유일한 언어였다. 림 참사관이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그것이 구조가 아니라 제안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당신의 대사관에 우리를 들인다면 그건 구조가 아니라 당신의 선택이다. 나는 그 선택 앞에 머뭇거렸다. 과연 우리가 받아들여질 자격이 있을까? 적국? 아니 그냥 인간. 국기를 접고 말투를 버리고 신분을 잊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나라가 존재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세계였다. 차 안은 더웠다. 에어컨이 꺼진 게 아니라 공기가 모두 두려움으로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숨을 쉬지 못했다. 손을 잡고 있는 것도 등을 맞대고 있는 것도 모두 낯설었다. 전쟁은 모든 관계를 낯설게 만든다. 우리끼리도 서로를 믿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과 함께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이유로 같은 방향으로 같은 목적 없이 도망치고 있었으니까.

 

 

인간으로 남고 싶었다 그게 이기적인 바람일지라도

인간으로 남고 싶었다 그게 이기적인 바람일지라도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가 여전히 사람이라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총알과 소리, 분노와 침묵이 뒤섞인 그 장소에서 나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 곧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사다리 위로 한 사람씩 오를 때 나는 그들의 등을 봤다. 강 대사의 등이 굽어 있었고 림 참사관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의 자세 속엔 승리가 없었고 오직 살아남았다는 침묵의 고백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며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 눈물이 그들을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 같아서. 그런 눈물은 사치였다. 비행기가 떴고 우리는 돌아가야 할 나라로 떠났다. 하지만 나 자신은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몰랐다. 나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출국했지만 누군가의 얼굴은 잃고 있었다. 전쟁은 나를 찢어버렸고 사람들을 조각조각 흩어놓았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우리는 떨어졌고 기억 속에서만 이어졌다.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죄인이었다. 누군가는 총을 들었고 누군가는 문을 닫았다. 나는 문 앞에 있었고 문 안으로 들어가길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 문을 열어줬다. 그 사람이 누구든 나는 그 손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단지 인간이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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