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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옷으로 말한 시대와 인물

영화리뷰재밌어 2025. 9. 25.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옷으로 말한 시대와 인물은 스타일리스트의 시점에서 바라본 90년대 여성 사무직의 정체성과 억압 그리고 저항의 시각적 언어를 해석한다. 옷은 그들의 말보다 앞서 감정을 대변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옷으로 말한 시대와 인물

 

 

90년대 직장 여성의 옷이 말하는 질서

90년대 직장 여성의 옷이 말하는 질서는 단순히 복식의 문제를 넘어서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던 태도와 존재 방식에 대한 상징이었다. 스타일리스트로서 이 영화를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배경이 되는 1995년이라는 시대가 여성에게 어떤 이미지를 기대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단정함, 조신함, 눈에 띄지 않는 성실함. 이런 키워드는 당시 여성 사무직 복장의 방향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고아성이 연기한 김정자 캐릭터의 초반 복장은 그 시대의 교과서 같은 사례였다. 광택이 도는 셔츠블라우스에 무릎을 덮는 A라인 스커트 그리고 단정하게 정리된 단발머리까지 이러한 스타일링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복고일 수 있지만 당시 여성들이 무기처럼 두르고 다녔던 사회적 보호막이기도 했다. 이 복장은 눈에 띄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으려는 태도, 조직 속에서 방해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한 몸짓이었다. 그렇기에 스타일링의 첫 단계는 무해함이었다. 조직 내에서 그들이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의상은 최대한 평범하고 기능적인 범주 안에서 구성되었다. 패션이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기 이전 그들에게 옷은 먼저 생존을 위한 장비였던 것이다. 이런 질서 속에서 스타일리스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 무해한 틀 안에서 캐릭터들의 결을 미세하게 달리 표현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김정자의 블라우스는 같은 디자인이라도 소재가 조금 더 흐르듯 떨어지며 심은경이 연기한 유나의 복장은 보다 각지고 주름이 덜한 셔츠로 구성된다. 이렇게 같은 프레임 안에서도 인물의 기질, 태도, 긴장감이 미묘하게 드러나도록 의상은 정제된 차이로 감정을 표현한다. 복장은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말한다. 관객은 그것이 옛날 옷이라는 사실을 넘어 왜 그 옷이 선택되었는지 그 옷이 그들에게 어떤 방어였는지를 무의식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스타일링은 시각 언어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반항은 작은 단추 하나에서 시작된다

반항은 작은 단추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을 갖고 스타일리스트는 캐릭터의 내적 변화를 복장으로 먼저 암시하려 했다. 변화는 결코 한 번에 오지 않는다. 거창한 대사나 반전보다는 아주 미묘한 변화 예컨대 단추를 하나 풀었다거나 신발 굽이 조금 높아졌거나 스커트의 핀턱 주름이 생략되었거나 그런 변화들이 축적되어 인물의 성장 곡선을 그린다. 김정자가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부조리에 맞서는 과정에서 의상도 동반해 움직인다. 처음엔 칼같이 다려진 셔츠와 타이트한 스커트지만 중반부 이후에는 패턴이 있는 니트 조끼나 조금 더 자유로운 커프스 소매, 심지어 목걸이나 시계처럼 은은한 액세서리가 추가된다. 이건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공간에 드러내기 시작한 변화의 시작이다. 특히 중요한 지점은 복장 규정의 틀을 인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해체해 나가는 가다. 정형화된 유니폼 같은 옷차림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곧 캐릭터가 감정적으로 한 발짝 성장한 시점이다. 스타일리스트로서 이 흐름을 인지하고 배우와 상의하며 변화가 느껴지는 옷을 설계하는 것은 단순한 의상 작업이 아닌 심리적 서사의 시각화 작업이었다. 관객은 직접적으로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 변화를 포착하고 그 미세한 차이가 장면 속 긴장감이나 해방감을 고조시킨다. 결국 작은 단추 하나, 넥라인의 곡선, 신발의 높낮이 같은 것들이 말보다 먼저 인물의 내면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 점에서 스타일링은 비가시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유일한 물리적 매개체다.

 

 

감정은 옷의 주름과 섬유에 남는다

감정은 옷의 주름과 섬유에 남는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증명해 낸다. 어떤 장면보다 강렬했던 건 옷이 말없이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던 순간들이었다. 예를 들어 회의실에서 세 명의 주인공이 앉아 있을 때 각자의 셔츠에 생긴 주름과 자세에서 누가 긴장하고 있고 누가 결심했고 누가 아직 흔들리는지가 명확히 보인다. 의상이 단순히 입고 있는 것이 아닌 감정의 결과물이 되기 위해서는 섬유 선택과 핏, 착용 방식, 움직임의 여유 등을 치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스타일리스트는 배우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도록 의상을 설계한다. 옷이 인물을 입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옷을 입었을 때 감정이 그 위로 배어 나와야 한다. 후반부에서 인물들이 함께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이때 그들은 이제 조직의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존재로서의 자율성을 획득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 모습은 과하게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스타일 속에 담겨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복장이 더 눈에 띄지 않게 된 순간이 오히려 스타일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옷으로 자신을 방어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었고 그 변화는 스타일리스트로서 가장 깊은 보람을 느끼게 했다. 의상은 장면이 끝나면 사라지지만 그 옷이 말한 감정은 관객의 기억 속에 남는다. 스타일링이 성공했다는 것은 관객이 그 옷을 기억하기보다 그 옷이 입혀졌던 감정을 기억하는 것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그 점에서 스타일링이 단순한 시대 복원이 아니라 감정의 공명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음을 증명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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