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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 말하지 못한 아들의 기록

영화리뷰재밌어 2025. 9. 23.

사도 – 말하지 못한 아들의 기록은 사도세자의 내면에서 시작된 회고 형식의 영화 리뷰다. 왕의 아들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이선은 살아 있으면서도 버려지는 감각 속에서 무엇을 끝내 말하지 못했는지를 고백한다. 권력보다 외로움이 깊었던 감정의 파편들을 담아낸다.

 

사도 – 말하지 못한 아들의 기록

 

 

피할 수 없는 시선은 숨을 틔우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시선은 숨을 틔우지 않았다. 늘 누군가의 눈앞에 서 있어야 했다. 아버지의 눈, 신하들의 눈, 백성의 눈, 심지어 나 스스로의 눈조차도 내 진심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 시선들은 말없이 나를 조이고 있었고 나는 결국 그 안에서 한 번도 나 자신을 온전히 살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왕의 아들이었지만 왕의 자격을 갖지 못한 자로 평가받았다. 나는 충직하고자 했으나 아버지의 침묵 앞에서 나의 모든 감정은 무효가 되었고 결국 나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자가 되었다. 왕세자로 불렸지만 누구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하는 이름뿐인 존재. 그게 바로 내 운명이었다. 내가 옷을 벗고 거리를 뛰었을 때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순간이 가장 솔직했던 순간이라 느꼈다. 위엄이라는 탈을 벗고 내 안에 갇힌 불안과 분노를 마침내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날 것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솔직함조차 세상은 용납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은 언제나 멀었다. 그는 나를 보되 보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고통 속에 갇혀 있는지 그는 묻지 않았고 나도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나는 그렇게 피는 이어졌지만 마음은 멀어진 채 서로를 소모하며 존재했다. 어떤 날은 내가 아버지가 되고 어떤 날은 그가 나보다 더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적이 아니었지만 서로에게 벽이 되었고 그 벽은 너무 두꺼워서 끝내 부서지지 않았다. 나는 감정을 품을 곳이 없었다. 궁궐은 너무 조용했고 말은 항상 의심을 만들었고 숨은 언제나 죄처럼 느껴졌다. 나의 고요는 광기로 보였고 나의 분노는 반역으로 낙인찍혔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조차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진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누구의 아들도 아니었다

나는 결국 누구의 아들도 아니었다. 사도세자라는 이름은 실재보다 허상에 가까웠고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이름으로 나를 이해하려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대답이 두려웠다. 나는 누구보다 말을 많이 했지만 그 모든 말은 울림 없이 사라졌고 결국 침묵이 나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궁 안의 모든 공간은 감옥 같았다. 책을 펴도 문장이 들어오지 않았고 숨을 쉬어도 공기가 나를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안에서만 죽어가고 있었고 겉으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다. 사람들은 나를 광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스스로 미쳤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제정신인 채로 살아야 하는 세상이 더 미쳐 있었고 그 안에서 이성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이에게 아버지로 남지 못했고 아내에게 남편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로서 불충했고 백성들에게는 세자로서 부족했다. 결국 나는 모든 관계에서 실패했고 그 실패가 쌓여 나라는 사람을 집어삼켰다. 그럼에도 나는 묻고 싶었다. 그 모든 오해와 고통 속에서도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한 번쯤은 누군가가 내게 "괜찮다. 너는 너대로 괜찮다." 그 한 마디만 해주었더라면 나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들 수 있었을까? 나는 끝내 그 말을 듣지 못했고 그래서 그 빈자리에 끝없는 분노와 슬픔이 자라났다. 그건 결코 병이 아니었다. 그건 살아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연결되지 못한 자의 절규였다.

 

 

죽음은 형벌이 아니었다 유일한 언어였다

죽음은 형벌이 아니었다 유일한 언어였다. 뒤주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고요해졌다. 숨이 가빠오고 몸이 마르고 시간이 서서히 나를 삼켜갈수록 나는 아이처럼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나를 가둔 아버지를 괴물이라 말할 수도 있고 그를 용서하지 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이해하려 했다. 그 또한 괴로웠을 것이다. 그는 왕이었고 나는 아들이었지만 그 누구도 우리에게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뒤주는 감옥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어떤 꾸밈도 없이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처음으로 숨을 쉬었다. 천천히 끝이 가까워져 올수록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내 죽음은 처벌이 아닌 침묵이었다. 끝내 말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나는 말없이 내려놓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쓰지 못한 편지는 내 가슴 안에서 녹아내렸고 그 잉크는 이제 시간이 삼켜버렸다. 살아서는 누구의 이해도 받지 못했지만 죽어서라도 누군가가 내 고통을 생각해 준다면 그걸로 나는 족하다. 나는 어쩌면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역시 아들을 잃었고 나는 나를 잃었다. 우리는 서로를 버린 것이 아니라 버림 당하지 않기 위해 버리는 척을 했던 두 개의 외로운 마음이었다. 그 외로움이 지금도 하늘에 떠 있다면 나는 다시 세상에 묻고 싶다. "나는 정말 미쳤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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