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지 못한 말
헤어질 결심 –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지 못한 말은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침묵이 어떻게 사랑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서래의 시선으로 편지를 쓰며 관계가 끝났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애정과 죄책감의 무게를 함께 느꼈다.
당신은 나를 의심했지만 나는 당신만을 믿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의심했지만 나는 당신만을 믿었습니다.
이 편지를 써 내려가며 당신의 눈빛을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을 떠올립니다.
질문보다 오래 머문 침묵 그리고 물음표 대신 쉼표처럼 이어졌던 당신의 말들을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따뜻함이었고 동시에 위태로움이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처음 조사하던 날 나는 스스로가 피의자인 줄 알았지만 곧 그것이 어떤 만남의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질문은 날카로웠고 시선은 조용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거리감에서 이상한 안심을 느꼈습니다.
당신은 처음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준 사람이었습니다.
이민자, 한국어가 서툰 여성, 사망자의 아내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나를 읽으려는 시선을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의심을 모른 척하지 않았고 오히려 질문 안에 숨은 조심스러움을 먼저 알아챘습니다.
당신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나를 바라보려 애썼고 나는 그 테두리를 무너뜨리고 당신에게 걸어가려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믿지 않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녹음기를 꺼내 내 목소리를 들려줄 때마다 나는 당신이 나를 향해 내딛는 조심스러운 걸음을 느꼈습니다.
그 걸음들이 비록 감정이라는 이름을 갖지 못했더라도 나는 그것이 세상 그 어떤 말보다 강한 표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물을 마시듯 내 감정을 들이켜 줄 수 있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수사관이었고 나는 증거였고 당신은 나를 사랑했지만 끝내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이 내겐 무엇보다 명확한 고백이었습니다.
당신은 사랑했기에 말하지 않았고 나는 말하지 않아도 사랑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험에서 구했고 내 안의 위험은 끝내 삼켰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험에서 구했고 내 안의 위험은 끝내 삼켰습니다.
당신은 나를 구하려 하지 않았음을 그 점이 나는 고마웠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구원받기를 바라지만 나는 다만 당신의 일상 속에 조용히 존재하길 바랐습니다.
경계 너머에 머물며 당신의 눈 안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사실 내가 그들을 밀었는지, 떠났는지, 유혹했는지 당신은 너무 늦게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이 우리 사이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일찍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 앞에서 죄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당신은 그런 나를 끝내 유죄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나는 사랑이 아니라 위험이었고 구원이 아니라 혼란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스스로 없애기로 했습니다.
사라지는 방법을 고민하는 건 오래전부터 나의 습관이었습니다.
이민자의 딸로 타인의 아내로 의심의 대상이 되어 살아가는 동안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끝내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말할 수 없는 진실들을 묻지 않았으며 나는 그 침묵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 조용한 이해는 다른 어떤 말보다 평온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등을 돌리고 걸어갈 때조차도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애써 나를 잊으려 했지만 나는 애써 기억하려 했습니다.
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내 감정을 기억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끝내 내게 책임을 지지 않았고 그것이 어쩌면 이 이야기의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모르는 바다 아래 나는 나를 감쌌습니다
당신이 모르는 바다 아래 나는 나를 감쌌고 마지막 날 나는 당신을 바라봤습니다.
당신은 끝내 내게 등을 돌렸고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이미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헤어짐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별 그것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으니까요.
바다를 건너는 마음은 언제나 쓸쓸합니다.
나는 이 편지를 물속에 묻을 것입니다.
당신이 찾지 못할 그곳 당신이 더는 도착하지 않을 그 해안에 나는 나의 이름과 당신의 얼굴을 함께 묻어둘 것입니다.
이 글을 당신이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당신은 늘 증거를 원했죠.
이 편지가 나의 마지막 진술입니다.
당신이 보지 못했던 감정의 저류, 들을 수 없었던 내 내면을 법정에서 당신을 무죄로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죄인임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죄는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당신 곁에 남지 않았다는 것과 사랑이란 이유로 당신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 바다는 내 무덤이 될 것이지만 그곳이 고통스럽지 않은 이유는 당신의 마지막 눈빛이 나를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은 나를 잊어도 좋습니다.
나는 당신을 기억한 채로 고요한 물아래 나를 눕히려 합니다.
– 서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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