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끝내 지울 수 없었던 피의 잔상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끝내 지울 수 없었던 피의 잔상은 단순한 액션 스릴러가 아니었다. 나는 그 영화 속에서 인간이 자기 죄를 감추기 위해 택하는 방식이 결국 자기 파멸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지금도 그 총성과 숨죽인 복수가 내 기억 깊은 곳에서 맴돌고 있다.
잘못을 지우려는 손이 더 많은 흔적을 남겼다
잘못을 지우려는 손이 더 많은 흔적을 남겼다. 그날 극장에서 스크린을 마주한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한 순간도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폭력은 예고 없이 터졌고 침묵은 그 폭력보다 더 오래 화면을 점령했고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이 어떤 죄를 저지르고도 그것을 의미 있는 복수로 포장하려 드는 방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마주했다. 인남이라는 인물이 총을 쏠 때마다 나는 누군가의 지난날을 폭파시키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그의 분노는 정당해 보였지만 그 정당성은 잔인함을 무디게 하지 못해 마치 죄를 사하는 대신 더 정교하게 재배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복수가 인간을 구원하는 방식이 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는 잘못된 관계의 틈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잘못을 만들어냈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세 명을 죽이고 하나의 아이를 위해 도시 전체를 불태우는 것 같은 그 비합리적인 균형 속에서 나는 숨이 막혔다. 정의라는 단어는 그 어떤 장면에서도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부재 자체가 이 영화의 가장 강한 메시지로 자리 잡고 있어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를 따라가는 내 눈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가는 길은 결국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반드시 희생시켜야 하는 길이었으니까.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이면서 누군가의 살인자였고 그 두 정체성은 분리되지 않은 채 얽혀 있었다. 나는 그 혼란스러운 존재를 통해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잘못을 정당화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그 장면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도망치는 듯 보였던 인남의 마지막 얼굴, 그러나 나는 그 시선이 결국 스스로를 향한 돌진이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못해 지금도 그 잔상이 내 기억의 끝자락에서 미세하게 흔들린다.
인간은 죄를 물처럼 흘려보내지 못한다
인간은 죄를 물처럼 흘려보내지 못한다. 나는 그 생각을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반복했다.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됐지만 그 속도보다 더 강렬했던 것은 인물들의 감정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빙빙 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했고 어떤 순간에는 모든 감정이 단 한 프레임에 집약되어 폭발했다. 나는 특히 라이벌인 ‘레이’를 주시하게 되었다. 그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잃은 것에 집착했고 그것을 회복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파괴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를 보며 인간은 때로 죄의식이 아니라 결핍이 만든 괴물로 변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레이는 매 장면마다 새로운 폭력을 만들어냈지만 그 폭력은 마치 의식처럼 반복되는 비극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그가 누구보다 감정적으로 움직였지만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한 파괴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더 슬펐고 그는 정의를 외치지 않았고 동정도 구하지 않았다. 그저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눌려 몸부림치는 인간일 뿐 그의 행동은 결국 인남과 겹쳐졌다. 나는 이 영화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죄를 처리하려는 두 사람의 거울 같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하나는 죄를 덮으려 하고 다른 하나는 죄를 되갚으려 하고 둘 다 결국 그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죄란 그렇게 인간을 완전히 감싸고 지우지도 못하게 만든다. 나는 그 사실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두 남자의 눈빛이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 자신도 이미 자신의 죄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폭력과 복수가 중심에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인간이 죄를 감추는 방식과 마주하는 방식 모두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무력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던진 가장 무거운 메시지였다.
구원은 없었고 선택만이 남았다
구원은 없었고 선택만이 남았다. 마지막 총성이 울리고 먼지가 가라앉고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나는 어떤 정리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건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구원의 가능성을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남은 끝내 죄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는 누구도 구하지 못했고 자신마저도 구하지 못했다. 그가 선택한 마지막 장면은 일종의 해방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모든 감정과 책임에서 도망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나는 그 순간 이 영화가 용서 대신 책임을 남기는 영화라고 느꼈고 구원은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인남은 선택했다. 그 선택은 정당화될 수 없었지만 그 안에는 최소한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 영화가 그 진심마저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용기가 고맙다고 느꼈다. 총을 쥔 손이 흔들렸고 눈빛이 흐려졌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마저 무거웠다. 그 모든 순간이 한 인간이 죄를 어떻게 품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기록처럼 느껴졌다. 이건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누구도 이기는 싸움이 아니었고 단지 한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를 등에 지고 걸어가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폭력의 결말에 구원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걸 받아들였고 그 사실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드는 세상의 시선보다 해결되지 않는 채로 남겨진 감정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인남이 떠난 자리엔 침묵만 남았고 그 침묵 안에서 나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며 또 얼마나 오래 남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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